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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로써, 혹은 좌절로서 완성된 이들
- 그 운명의 처연함에 부쳐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에 대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 임마누엘 칸트 어느 산 속, 두 남자가 부둥켜안고 죽어 있다. 이미 차갑게 굳어 있는 시체는, 얼마 동안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인지 거의 뼈밖에 남아 있지 않다. 부귀영화와 일신의 안녕을 버리고 義를 찾아 떠났던 그들은 不義로 가득 찬 세상에서 더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산으로 들어갔다. 혹은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고사리만을 캐 먹다가 굶어 죽기에 이른다. 그 죽는 순간에도 그들은, ‘폭력으로 폭력을 제거했으면서도 그 그릇됨을 모른다’고 不義를 질타했다고 전해진다. 漢의 수도, 당대에 가장 번성했던 도시 장안의 어느 집 안, 한 남자가 앉아서 붓을 들고 글을 쓰고 있다. 남자의 국부에서는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 고름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10년, 그는 130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서를 탈고하기에 이른다. 義를 주장하다가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던 그는,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형벌을 자처하여 살아남았다. 혹은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그 역사서, 아니 최초의 역사대계(大系)에 不義에 대한 항거로 고사리만을 캐 먹다가 굶어 죽기에 이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서문으로 싣는다. 그리고 그는 그 서문에서 『論語』에 등장했던 질문을 반복한다. 그들은 원망했는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그 질문은, 바로 그렇기에 그 두 사람에 대한 질문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질문은 굴원과 백이와 숙제를 경유해 사마천에게 와서 내향introversion한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고통과 치욕의 시간은, 怨이라는 글자에서 비로소 묵중한 절규로 터져나온다. 그는 원망했는가. 그런데 『論語』에서도 『史記』에서도 원망의 대상에 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혹은 그들은 무엇을 원망했던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자들? 혹은 不義? 그 무엇도 아니라면 그들이 원망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義 때문에 쓸쓸하게 산중에서 굶어 죽어간 이들이나 그마저도 할 수 없어 치욕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했던 사람. 그들이 무언가를 원망했다면 ‘세상’이라는 기표는 그 대상을 지시하기에는 너무 가볍다. ‘운명’. 그 처연한 운명이야말로 그들이 원망했던 대상일 것이다. 그들이 무언가를 원망했다면. 그렇다면 그는, 혹은 그들은 원망했던가. 답은 ‘분명히 그렇다’이다. 그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인 이상.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성계와 예지계 사이에 걸쳐 있는 존재인 인간은, 그렇기에 비로소 ‘의지’가 존재할 여지가 생긴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 등을 쫓는, 이른바 자연적 경향성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의지.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유’가 있다. 흔히 백이, 숙제, 사마천을 ‘의지가 강했던 이들’이라고 평가하는데, 이는 칸트의 의미에서라면 대단히 적확한 평이다. 그러나 그 근저에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백이와 숙제가 제후 자리를 고사하고 고죽국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 바로 그 순간 그들의 운명은 정해졌다. 그들은 주나라 문왕의 가신들이 든 칼에 떨어지는 이슬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일어난 반전에 의해 그들은 義人의 칭호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들이, 그들의 자유로운 의지가 선택했던 것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운명이었다. 다만 그 실현이 지연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연된 운명은 더욱 철저하게, 한편으로는 처절하게 그 자신을 실현한다. 그 운명은 사마천에게서도 반복된다. 그가 조정의 환관들을 비판하고 이릉이 패전했던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을 때, 그의 운명은 그 순간에 정해졌다. 그도 역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자처하고 살아남는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 지연된 운명 끝에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바로 ‘원망하고 있는가’ 였다. 운명을.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지연시키고 또 완성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좌절이었다. 백이와 숙제도, 사마천도, 굴원도,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큰 좌절을 맛본다. 역설적으로 그 좌절의 순간에 그들의 삶은 완성된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되어 아련한 빛을 낸다. 수천 년에 걸쳐. 감성계와 예지계 사이에 걸쳐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에, 한 사람으로서 온 몸으로 받아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운명을 그들이라고 어찌 원망하지 않았으랴. 그렇기에 중요한 질문은 ‘그들은 원망했는가’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웠는가’여야 한다. 그들이 굴리기 시작한 처연한 운명의 수레바퀴 속으로 조금씩 말려들어간 그들이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자유로웠고, 또한 그렇기에 그들은 인간이었다. 원망조차 하지 않았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간인 그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인간, 그리고 그 의지를 통해 자연적인, 혹은 동물적인 욕구를 극복했던 인간. 칸트가 이야기했던 ‘선-의지’라는 것이, 적어도 그들에게는 존재했던 것 같다. 義人인 그들에게는. 덧붙여. 그 유서에는 ‘운명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진정으로, 그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가 시작한 운명,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가 좌절해야만 했던 바로 그 운명. 또한 그 유서에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조차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도, 사람이었다.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사람. 칼럼에 올릴지 말지 고민중인 글. 어찌 할 것인지 덧글로 의견 좀 달아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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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_-by 류현 at 11/06 Wolfram 한테 물어봐... by RG at 11/06 네, 양손 검지로만... by 류현 at 11/03 그렇게 회피하시다니! by 류현 at 11/03 쳇..야구 덕후 같으니. by 류현 at 11/03 독수리 타법이 뭐죠'ㅁ'? .. by 두두 at 11/03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by 김괜저 at 11/03 1.[기아타이거스]는.. by qqq at 11/03 으흠.............. by 류현 at 10/28 SM 특유의 노래/춤은 S.. by 이카리아 at 10/28 걔네 원래 변태기질이 .. by 류현 at 10/28 헉 그러면 SM 엔터테인.. by sifr at 10/28 그런 거였니 재단전설 촘.. by 화양연화。 at 10/25 .....쳇......제길.. by 류현 at 10/25 이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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